골목상권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동네 상권은 인근 주민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식당과 슈퍼마켓, 세탁소, 미용실처럼 생활에 필요한 업종이 골목을 채웠고, 가게의 경쟁력은 좋은 입지와 저렴한 가격, 오랜 단골에서 나왔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과 배달 플랫폼이 일상화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면서 골목상권의 성공 공식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소비자는 단순히 가까운 가게를 선택하지 않는다. 거리가 조금 멀더라도 특별한 메뉴와 차별화된 공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으면 직접 찾아간다. SNS에서 발견한 작은 카페나 음식점을 방문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이동하는 소비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과거 동네 주민을 대상으로 하던 골목의 작은 점포가 하나의 방문 목적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경험’이 있다. 과거에는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 소비자는 상품뿐 아니라 공간과 서비스, 이야기를 함께 소비한다. 카페를 방문해도 커피 맛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와 음악, 직원의 응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과 브랜드가 전달하는 분위기까지 경험한다.
골목상권의 브랜드화도 빨라지고 있다. 작은 가게라고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규모가 작을수록 명확한 개성과 이야기가 중요하다. 대표 메뉴와 포장, 매장의 분위기, 고객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다. 고객이 가게 이름과 대표 상품을 기억하기 시작하면 작은 점포도 경쟁력 있는 지역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
SNS는 골목상권의 입지 개념까지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유동인구가 많은 중심 상권에 들어가기 위해 높은 임대료를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골목 안쪽에 위치한 가게라도 SNS와 온라인 검색에서 주목받으면 소비자를 불러올 수 있다. 소비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영상, 이용 후기는 또 다른 광고가 된다.
대표적인 변화는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와 골목상권에서 쉽게 확인된다. 낡은 주택이나 소규모 점포를 개조한 카페와 베이커리, 공방 등이 기존 건물의 특징을 살린 공간과 독특한 상품을 앞세워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 점포는 단순히 제품 사진만 SNS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빵을 굽는 과정, 재료를 고르는 기준, 공간을 만든 이야기 등을 콘텐츠로 전달한다.
온라인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공유되면서 인근 주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고객이 증가하고, 예약 판매와 포장 주문 등으로 매출 경로도 다양해지고 있다. 골목이라는 입지의 약점을 콘텐츠와 브랜드 경험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지역 음식점에서 나타나는 디지털 경영이다. 직장인 점심 매출에 크게 의존하던 소규모 음식점 가운데 일부는 소비 위축과 경쟁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대별 주문 내역과 인기 메뉴를 분석하고 메뉴를 재구성하고 있다. 판매량이 낮은 메뉴를 줄이고 대표 메뉴에 집중하는 한편, 모바일 예약과 포장 주문을 확대해 점심시간에 집중됐던 매출을 저녁과 주말까지 넓히는 방식이다.
특히 소규모 점포에서도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 마케팅 인력이 없는 음식점이나 카페 운영자가 AI를 활용해 SNS 게시물 초안을 만들고 신메뉴 이름이나 홍보 아이디어를 얻으며 고객 후기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과거 외부 업체에 맡기거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던 업무를 사업자가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 기술이 골목상권의 새로운 생산성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골목상권의 디지털 전환은 반드시 거대한 투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모바일 주문과 예약, 고객관리, SNS 콘텐츠 제작, 매출 데이터 분석처럼 작은 변화에서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이용해 고객의 불편을 얼마나 줄이고 사업자의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있다.
하지만 골목상권의 현실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임대료와 인건비, 원재료비 상승은 소상공인의 경영 부담을 높이고 있으며 배달과 온라인 플랫폼 의존도가 커질수록 수수료 문제도 무시하기 어렵다. SNS에서 일시적으로 화제가 됐다고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한 번 방문한 고객을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단골로 만드는 경영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따라서 앞으로 골목상권의 경쟁력은 ‘단골·브랜드·디지털’의 결합에서 찾아야 한다. 고객과 직접 관계를 형성하고 가게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객 접점을 넓혀야 한다.
개별 점포뿐 아니라 같은 지역의 음식점과 카페, 공방, 전통시장 등이 공동 행사와 콘텐츠를 통해 하나의 상권 브랜드를 만드는 전략도 필요하다. 한 가게의 인기를 넘어 골목 전체에 ‘찾아올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이택호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스마트AI경영학과 교수(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컨설턴트))는 “골목상권의 경쟁 상대는 더 이상 옆 가게에 머물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과 전국의 수많은 브랜드로 확대됐다”며 “작은 가게일수록 고객과 가까운 강점을 살리고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자신만의 브랜드와 고객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골목상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게를 열었다면 이제는 매력적인 가게가 사람을 골목으로 불러들이는 시대다.
작은 공간에서도 특별한 경험과 이야기를 만들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객과 연결되는 가게가 새로운 골목경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결국 미래 골목상권의 경쟁력은 점포의 크기보다 고객에게 ‘왜 이곳까지 와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