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한정찬] (시) 무릎

[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시인 한정찬의 '무릎'




무릎

 

1

 

무릎 하나 접었다.

 

그 순간
세상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보이지 않던 길 하나가
발밑이 아닌
마음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빛을 냈다.

 

바람은
높은 나무의 가지보다 먼저
낮은 풀잎의 등을 쓸어주었고,

 

강물은
가진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마침내
거부하지 않는 바다가 되었다.

 

나는 오래도록
높은 곳을 바라보며 걸었지만,

 

낮아진 자리에서야
들리지 않던 숨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던 얼굴을 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눈을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긴 시간을 향해
마음 하나
조용히 접어놓는 일이라는 것을.

 

 

2

 

몸은 한결같이
믿음보다 먼저
기억을 호출한다.

 

무릎보다 더

높은 세상이 있다.

 

우리는 세상보다

더 낮은 곳에서
두려움을 내려놓는다.

 

굳은 뼈와 느려진 체온이

한 사람의 생애 안팎에서
잠시 떠받치고 있다.

 

사랑은 품는 일이 아니라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무릎 하나가

사라진 뒤에도

그 높이를 마냥 그리워하며

한세상을 또 살아간다.

 

 

3

 

일이 무릎까지 차오르면
아직 해 볼 만하다.

 

아픔이 무릎까지 차오르면
아직 견딜 만하다.

 

무릎은 늘
정량과 정성의 마지막 눈금.

 

강은 그 높이에서 물결을 풀고
바다는 윤슬을 켠다.

 

나는 무릎을 보며
일출과 일몰을 생각한다.

 

 

▲한정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정찬

□ 농업인(小農), 행정안전부 안전교육전문강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소방안전컨설턴트 외

□ (사)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사)한국문인협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한정찬시전집 2권, 한정찬시선집 1권’ 외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작성 2026.08.09 14:20 수정 2026.08.0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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