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정보신문] 서울 북부 지역에서 20년 이상 된 구축 아파트를 구매해 직접 리모델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직장인 A씨는 최근 24평형 낡은 아파트를 사들여 인테리어를 전문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 도배, 페인트칠, 장판 교체, 조명과 욕실 샤워기 교체 작업을 한 달 가까이 이어갔다. 그는 신축 아파트를 구할 경제적 여유가 없고, 급등하는 집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후 주택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는 신축 아파트 분양가 급등과 청약 경쟁 심화,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주거 방식을 다르게 선택하고 있다. 오래된 아파트를 구입해 직접 손보거나, 기존 공간을 재구성해 좁은 집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증가했다. 직장 근처에 살기보다 외곽에서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는 사례도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주거비 부담이 실질적인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셀프 인테리어에 나서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테리어 시공 경험자 10명 중 7명(66.1%)이 직접 공사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완셀(완전 셀프)’과 ‘반셀(반 셀프)’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직접 시공하는 방식이 확산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99만 명 규모의 셀프 인테리어 정보 공유 사이트에는 매일 수많은 질문과 경험담이 올라오고 있다. 한 신혼부부는 33년 된 구축 아파트의 리모델링 비용이 1억 원에 달해 직접 공사를 결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튜브에서는 셀프 인테리어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들이 수십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관련 컨설팅 업체도 등장했다. 이들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업체에 맡기기보다 일부 공정을 기술자와 자재를 직접 구해 처리하는 ‘반셀프’ 방식으로 시공 비용을 30~40% 절감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업계 관계자는 “디자인이나 취향보다 비용 절감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정부가 작년 6월 발표한 수도권 규제 지역 중심의 대출 규제 강화와 맞물려 있다. 주택 공급 부족과 집값 상승에 대출 한도 축소까지 겹치면서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의 신축 아파트 매입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구축 아파트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구축 아파트는 배관, 욕실, 바닥재, 벽지 등 노후화된 부분이 많아 리모델링 비용이 상당하다. 자재 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최소한의 수리 비용만으로도 수천만 원에 이르는 견적을 받는 경우가 많다.
30대 신혼부부는 “집값과 대출 한도에 맞춰 집을 구할 수밖에 없고, 모은 돈을 대부분 집 구매에 쏟아부어서 도배와 페인트칠 같은 작업은 직접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은 집주인의 보유세 부담 증가에 따른 계약 종료 시점에 집을 비워줘야 하는 불안감도 안고 있다. 한 세입자는 “비싼 비용과 안전 문제 때문에 셀프 인테리어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주거 사다리로 불리던 생애 주기별 공간 이동이 끊기면서 기존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는 ‘공간 쪼개기’도 확산됐다. 가족이 늘거나 생활 공간 부족으로 이사하는 대신 가벽을 세우거나 수납장을 벽처럼 활용하고, 거실과 안방 일부를 여러 용도로 나누는 사례가 많아졌다. 접이식 식탁과 이동식 수납장 등 공간 절약형 가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거래된 전용면적 21~40㎡ 초소형 아파트는 310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55건보다 51% 증가했다. 2021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급등한 집값과 대출 규제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평수를 줄이고 가격 부담이 적은 초소형 아파트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분석한다. 40대 한 가구주는 “아이들이 크면서 넓은 집으로 옮기고 싶지만 대출 규제 때문에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낡거나 좁은 집을 선택하는 대신 직장 근처 거주를 포기하고 외곽이나 수도권으로 이주하는 사례도 늘었다. 과거에는 출퇴근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주택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집값과 대출 한도에 맞춰 거주지를 정하는 경향이 커졌다.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는 대신 주거비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소비 트렌드가 아니라 실수요자의 구매력 저하가 만든 구조적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명지대 부동산학과 이상영 교수는 “주거비를 줄이며 입지와 공간 중에서 선택하는 주거 전략이 이뤄지고 있다”며 “주거비와 생활의 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교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서진형 교수는 “집값 상승 속도를 근로소득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기존 주택을 자신의 여건에 맞춰 고쳐 쓰는 방식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