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한정찬} (시) 119 소방 활동 서사시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한정찬의 시 "119 소방 활동 서사시(敍事詩)"


 

119 소방 활동 서사시(敍事詩)

열면서

 

사람들이 불길을 피해
밖으로 달아날 때

우리는
그 불길을 향해 간다.

사람들이 연기를 피해
숨을 낮출 때

우리는
그 짙은 연기 안으로 들어간다.

119.

짧은 세 글자

그러나 그 안에는
누군가의 집이 있고
누군가의 가족이 있고
누군가의 오늘과 내일이 있다.

불은
따뜻한 밥을 익히고
추운 밤을 녹이는
작은 태양이었지만

한순간의 방심 앞에서는
삶의 보금자리를 삼키는
검은 입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불을 두려워하면서도
불길 앞에 선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살려야 할 사람이
더 크기 때문이다.

 

 

1. 화재 출동

 

사이렌이 울린다.

고요하던 정막이 찢어지고
잠들어 있던 도시가 흔들린다.

누군가는 전화를 걸고

누군가는 창문을 열어
붉은 하늘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우리는

소방차에 오른다.

119.

불이 난 장소를 향해
차가운 도로를 가른다.

사람들이 피해야 할 곳으로

우리는 간다.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

사람,

재산도 아니고

건물도 아니고

불길을 이기는 명예도 아닌

살아 있는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다.

 

 

2. 불나기 전

 

그러나 소방관이 가장 바라는 것은

출동하지 않는 날이다.

불이 나지 않는 하루

119가 울리지 않는 밤

가족들이 무사히 잠들고

아침에 아무 일 없이
문을 열고 나오는 세상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인화물과 발화물을
안전하게 관리해 달라고

콘센트는 안전하게 사용하고
문어발식 사용은 하지 말라고

사용한 전기는 끄고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고

가스를 사용할 때는
한눈팔지 마세요.

사용 후에는
밸브를 잠가 달라고

담배는 정해진 장소에서 피우고

담배꽁초의 불씨는
완전히 끈 뒤 버려 달라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단한 영웅적 행동이 아니다.

한 번 더 살펴보는 것

한 번 더 확인하는 것

작은 불씨 하나를
작은 불씨일 때 그 불을 꺼 주는 것

그것이

소방관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출동이 없는 하루다.

 

 

3. 용접 불티

 

용접하기 전에는

화기 취급 허가서를 받고

안전 수칙을 지켜 달라고
우리는 말한다.

소화 기구를 준비하고

용접과 용단에서 튀는 불꽃을
항상 살펴 달라고.

눈앞에서 사라진 불꽃 하나가

어디에 떨어졌는지.

그 불꽃이
무엇을 만나고 있는지.

가연물은 없는지

끝까지 확인해 달라고.

불은
사람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작은 불꽃 하나가
벽을 타고

천장을 타고

기억과 사진과
한 가족의 시간을 태운다.

그래서 우리는

불꽃보다 먼저
주변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화재 예방은

소방관이 도착한 뒤가 아니라,

불꽃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4. 불이야

 

출동 지령이 떨어진다.

화재

건물 안에서
연기가 올라온다는 신고

우리는 안다.

지금부터 시간이
사람보다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소방 작전에 따라

현 상황을 파악하고

화재를 진화하며
사람을 구조한다.

그리고 외친다.

불이야.

대피하세요.

누군가는
소방 비상벨을 누르고

누군가는
문을 두드리고

누군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그 이후의 일이지만,

그 목소리를 따라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를

우리는 기다린다.

119 신고를 받은 사람에게는
정확한 위치를 알려 달라고 말한다.

건축물 이름

불난 장소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연기를 마신 사람이 있는지.

불의 크기와 상황

정확한 말 한마디가
우리의 소방 작전에

큰 정보가 된다.

한 번의 신고가

몇 분을 벌고

그 몇 분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평생 살리는

나침반이 된다.

 

 

5. 소화기

 

불의 규모가 작다면

우리는 말한다.

먼저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라고

그리고 소화기를 들라고

안전핀을 뽑고

불을 향하고

손잡이를 누르고

좌우로 쓸어라.

그러나

소방관인 우리도 안다.

불은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만큼
작게 머물러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검은 연기가 짙어지고

열기가 얼굴을 밀어내고

불길이 천장을 삼키기 시작하면

그때는

소화기를 곧바로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이 살아야
다시 소화기를 들 수 있다.

물건은 잃어도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의 생명은

한 번 잃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화재 진화보다 대피가 먼저다.

그 말 다음에는

우리 소방관 자신에게도

안전을 미리 지켜가며
화재 진화를 하라는 명령이다.

 

 

6. 옥내소화전

 

초기 화재

옥내소화전의 문을 열고

호스를 꺼낸다.

호스가 꼬이지 않도록
길게 펴고

노즐을 굳게 잡는다.

밸브를 연다.

힘찬 물줄기가
불길을 향한다.

직사 물 쏘기

분무 물 쏘기

화재 상황에 따라
물 쏘는 방법을 바꾼다.

불길은 물을 만나
잠시 흔들리기의 파고를 탄다.

그러나

연기가 짙어지고

열기가 거세지면

우리는 다시 판단한다.

여기까지인가.

더 들어가야 하는가.

돌아가야 하는가.

소방관에게도
용기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이성의 냉철한 판단이다.

살리기 위해 들어갔지만

살아 돌아와야
또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불과 싸우면서도

퇴로를 늘 확보한다.

언제나

돌아갈 길을 남겨 두어야

또 다른 진화를 위한 방편이다.

 

 

7. 연기 속

 

연기는
우리보다 빠르다.

사람의 눈보다 빠르고.

사람의 판단보다 빠르고.

사람의 발걸음보다 빠르다.

그래서 우리는 화재 현장에

진입할 때 몸을 낮춘다.

공기호흡기 착용하고

소방호스를 펴며

노즐을 굳게 잡고

연기보다 더 아래로

낮게

조금 더 낮게

숨을 조금씩 쉬며
천천히 쉬며 들어간다.

문을 여는 방법도

안전하게

앞이 보이지 않아도

손으로 벽을 느끼고

문을 확인하고

화염 속 불타는 소리를 들으며

사람의 목소리까지 찾는다.

어디에 있습니까.

괜찮습니까.

들리십니까.

응답해 주세요.

연기 속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것은

불길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다.

나지막하지만

살아 있다는
그 작은 응답 하나다.

 

 

8. 계단 이용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마십시오.

계단으로 대피하십시오.

우리가 현장에서
가장 흔히 하는 말이다

유도등을 따라

비상구를 찾아

계단을 내려가십시오.

뛰지 마십시오.

밀지 마십시오.

앞사람을 배려하고

뒤따르는 사람을 기다리십시오.

한 사람이 넘어지면
여러 사람이 위험해진다.

한 사람의 침착함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지킨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마십시오.

휴대전화도

지갑도

돈도

사진도

소중한 물건도

다시 가지러 들어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들어갈 테니

당신은 살아서
밖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당신에게
가장 바라는 일이다.

 

 

9. 인명구조

 

현장에 도착하면
우리는 사람 수를 확인한다.

몇 명이 있었습니까.

어디에 있었습니까.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다친 사람은 있습니까.

연기를 마신 사람은 있습니까.

한 사람

또 한 사람

한 사람을 찾는 일은

숫자를 세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는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돌아가야 할 집이 있고

다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도 잊지 않고

한 사람도 위험 속에 남기지 않으려는

화재 진압 인명구조 구급 임무의

119 소방대원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불길 속으로 들어가
사람을 구하려 해도

여의 못한 한계가 있다.

우리까지 위험해지면
업무는 몇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때로는 영웅이 되지 않아도 된다.

밖으로 나와서

119의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된다.

 

 

10. 완강기

 

높은 건물

3층에서 10층까지

계단으로 내려갈 수 없는 사람

그때 우리는 침착하게 행동한다.

우리는 완강기를 활용한다.

후크를 지지대 고리에 걸고

로프를 창밖으로 내린다.

벨트를 몸에 맞추고

창밖 벽을 마주 본다.

천천히

침착하게

한 줄의 로프가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다.

그 줄 하나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아래로 매달려 하강한다.

우리는 아래를 바라본다.

제발,

안전하게 내려가기를

발이 땅에 닿았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불길에서 멀어지고

연기에서 멀어지고

안전한 곳으로
더 멀리 이동시킨다.

살아 내려온 사람은

살아 내려온 것만으로도

이미 가장 큰 일을 해낸 것이다.


 

11. 방화문

 

때로는

문 하나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다.

방화문,

그 문을 함부로 열지 말라고

우리는 말한다.

요구조자가

실내에 갇혔을 때는

연기가 들어오는 문틈은 막고

밖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창문도 함부로 열지 말아야 한다.

불길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야 신속한 판단을 해야 한다.

불은

공기를 만나면
더 크게 활활 타오른다.

그래서

방화문 하나

창문 하나

작은 틈 하나가

화재의 길과 크기가 달라지고

사람의 삶과 죽음의 운명을 바꾼다.

 

 

12. 옥상 탈출

 

불이 난 아래층으로
대피할 수 없을 때

위층으로 가야 할 때도 있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올라간다.

우리는 그들을 밖으로
안전하게 이끌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서 나가는 일이다.

보폭보다 연기가 더 빠르다.

그러므로

침착해야 한다.

뛰지 말아야 한다.

서로 밀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침착함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길이 된다.

 

 

13. 듣고 싶은 말

 

소방관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불을 껐습니다. 아니다.

모두 나왔습니다.

그 말이다.

한 사람도 남지 않았습니다.

다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안전합니다.

그 말 한마디가

긴 출동을 끝내고

우리 가슴에
가장 먼저 내려앉는다.

소방관에게

진정한 승리는

불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다.

 

 

14. 일상으로

 

화재가 진화된 뒤

사이렌은 멈추고

호스는 바닥에 놓이고

젖은 장갑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연기는 서서히 걷히고

사람들은
사람들을 찾는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확인한다.

남은 불씨는 없는가.

전기는 안전한가.

가스는 잠겼는가.

더 이상 위험은 없는가.

화재가 끝났다고

안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끝까지 살펴야 한다.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불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5. 약속

 

우리는 불이 나지 않기를 바란다.

119가 출동되지 않기를 바란다.

소방차가 출동하지 않는 일상

사람들이 평안히 보내는 여유로운

그 평범한 때를
우리는 한 없이 사랑한다.

그러나

119 출동 지령에

우리는 여지없이 성급히 출동한다.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곳으로

우리는 전신의 힘을 다해 간다.

시뻘건 불길 속으로

시커먼 연기 속으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있는 곳으로

누군가의 생명 위협이 있는 곳으로

결코 두려움이 없지 않아서가 아니다.

두려움보다

살려내야 할 사람이 있는
더 큰 소명 의식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닫으며

 

119.

불보다 먼저

사람을 생각한다.

재산보다 먼저

생명을 생각한다.

진화보다 먼저

안전을 생각한다.

그리고

출동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늘 기도한다.

불이야,

알려라.

119.

신고하라.

대피하라.

살아 있어라.

소화기 안전핀을 뽑고

바람을 등지고

불을 향하고

손잡이를 누르고

좌우로 쓸어라.

그러나

불길이 커지면

멈추어라.

돌아서라.

신속히 대피하라.

옥내소화전을 사용할 때

옥내소화전함 문을 열고

호스를 꼬이지 않게 펼치고

밸브를 열고

노즐을 잡고

물을 보내고

화재가 난 곳으로 달려가

물을 곧게 또는 분무로 힘껏 뿌려라.

그러나

연기와 열기가 거세지면

더 이상 머물지 마라.

밖으로 나가라.

119에 신속히 신고하라.

그리고 안전하게 대피하여

끝까지 잘 버텨 살아남아라.

우리는

불을 끄는 사람들인 동시에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도 잊지 않기 위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기 위해

한 사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검붉은 화염 안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마침내 밖으로 구조해 나온 사람을 보며

말없이 눈물 없는 마른 가슴으로 안도한다.

오늘도 위급한 상황에서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입니다.

그 한마디가

우리가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적절한 표현의 이유다.

불길보다 생명이 먼저다.

물건보다 사람이 먼저다.

소화보다 대피가 먼저다.

내 안전 먼저,
그다음에 소화하자.

119.

세 글자 안에는

오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과

누군가를 살리러 가는 사람과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소중한 한 사람의 생명이 있다.

우리는 그 생명을 향해 간다.

불길을 뚫고

연기를 지나

끝내

요구조자에게 간다.

119.

우리가 달려가는 그곳에는

늘 위급에 놓인 사람이 있다.




한정찬

□ 전직 소방공무원, 안전교육전문인력(행정안전부), 소방안전컨설턴트(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외

□ (사)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사)한국문인협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한정찬시전집 2권, 한정찬시선집 1권’ 외

□ 녹조근정훈장, 근정포장, 국무총리상,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작성 2026.08.25 18:39 수정 2026.08.26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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