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한 번은 아버지와 스승들의 그늘을 벗어나는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누구나 고독의 매서운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고독을 오래 견디지 못한 채, 머지않아 다시 익숙한 울타리 아래로 기어들어 간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나는 ‘주막듬’이라는 낙원에 살았다. 외로울 틈이 없었다. 항상 신났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희멀건 읍내 아이들 주변을 맴돌았다.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올 때는 참담했다.
‘두고 봐라 나 과학자가 될 거다!’
속으로 웅얼거리며 혼자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왔다. 혼자 있는 적막한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공상과학책을 즐겨 읽었다. 저 멀리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견딜 만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탐정 소설을 읽으며 외로움을 견뎌냈다. 그러다 시집을 접하고는 시를 썼다. 어느 고즈넉한 밤에 ‘추억’이라는 시 한 편을 써서 합격생이라는 잡지에 투고했다. 독자란에 실린 나의 시!
그 뒤 글쓰기는 외로움이 고독으로 바뀌는 연금술의 시간이었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한 번 태어나지만,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나의 글쓰기는 나의 정신적 자궁이다. 인간은 각자 하나의 세계다.
정신 깊이 들어갈수록 온 인류를 만난다. 가장 깊은 곳에서는 천지자연과 하나의 마음과 만난다. 그때 우리는 우주만큼 충만해진다.
현대는 고도생산사회라 우리는 풍부한 물질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외로운 시간을 회피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갈 기회를 잃는다.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우울과 권태가 엄습해 온다. 현대인의 가장 무서운 마음의 병이다. 고독의 희열(bliss)을 아는 것은 ‘인간의 길’을 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