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칸트 인식론의 전유 방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

『디카시와 철학』에 나타난 혼성 담론의 이론적 한계

이상옥의 『디카시와 철학』은 디카시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과 미학을 반복적으로 호출한다. 그는 디카시를 사진과 언어의 결합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시적 형식으로 규정한다. 문제는 이러한 규정이 칸트 철학의 핵심 개념들과 어떤 방식으로 접합하는가에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쟁점은 해석의 다양성이나 철학적 전유의 허용 범위를 넘어서, 칸트 철학의 개념들이 성립 조건을 유지한 채 사용하고 있는가를 질문으로 수렴한다.

 

이상옥은 디카시의 철학적 출발점을 칸트 인식론에서 찾는다. 그는 “우리는 어떻게 확실한 지식을 얻는가?”(48쪽)라는 질문을 칸트 철학의 핵심 문제로 제시한다. 이어 인간 인식은 감성과 오성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이 진술 자체는 칸트 철학의 일반적 요약에 해당하며, 표면적으로는 큰 오류가 없다. 이 기본 전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상옥은 사진을 디카시의 핵심 매체로 설정한다. 그는 사진을 “세계가 자기 자신을 조용히 열어 보인 찰나”(51쪽)로 규정하고, “언어가 따라 오기 전에, 그 순간”(51쪽)이라고 묘사한다. 여기서 사진은 감각적 직관의 직접적 현현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칸트에게서 감각적 직관은 그 자체로 인식이 아니다. 직관은 오성의 개념적 종합을 통해서만 인식으로 성립한다. 『순수이성비판』의 명제에 따르면, “직관들이 인식되어야 한다면 나는 직관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이마누엘 칸트, 김석수 옮김, 『순수이성비판 서문』, 책세상, 2002, 40쪽)고 규정한다. 개념 없는 직관은 인식이 아닌 맹목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상옥의 논의에서 이 인식론적 조건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는다. 그는 사진을 “존재의 실루엣을 포착하는 감각적 시도”(52쪽)라고 말하며, 디카시를 “물자체의 존재가 한순간 틈입해 들어온 징후”(52쪽)로 정의한다. 이 과정에서 오성의 범주, 판단의 구조, 혹은 개념적 종합의 역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감각적 접촉이 어떻게 의미 있는 인식이나 미적 판단으로 전화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제시하지 않은 채, 감각의 강도 자체가 의미를 보증하는 것처럼 서술한다.

 

칸트 철학에서 “감각은 직관에서 현상을 경험적으로 나타낸다”(임마누엘 칸트, 정명오 옮김, 『순수이성비판』, 동서문화사, 2015, 130쪽)고 말한다. 이는 감각이 인식의 조건이지 결과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상옥의 설명에서는 이 구분을 유지하지 않는다. 사진을 “세계의 비의가 잠깐 스며든 증거물”(52쪽)로 제시하며, 감각은 세계의 본질에 접근하는 통로처럼 기능한다. 칸트에게 세계의 본질은 현상 너머에 있으며, 감각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물자체는 “존재는 하지만, 결코 인식될 수 없다는 것”(49쪽)이다. 이 점은 이상옥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는 “물자체는 존재는 하지만, 결국 인식될 수 없다”(49쪽)고 적는다.

 

문제는 이 진술 이후의 전개이다. 이상옥은 디카시의 창작 순간을 물자체의 징후가 감각에 스며드는 순간으로 묘사한다. 그는 “시인은 무언가에 맞닿았다고 느낀다.”(51쪽)고 말한다. 이 맞닿음을 개념적 판단이나 반성적 사유가 아닌 감각적 충돌의 경험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칸트에게 물자체는 어떤 감각적 접촉의 대상도 아니다. 물자체는 경험의 한계를 설정하는 개념이지, 경험 속에서 체험되거나 포착되는 대상이 아니다.

 

이상옥은 이러한 인식론적 긴장을 미학의 영역에서 완화하려 한다. 그는 디카시를 칸트의 숭고 개념과 연결하며, 숭고를 “감각이 무력해지는 지점에서 이성의 위엄이 드러나는 순간”(53쪽)으로 설명한다. 이 설명은 『판단력 비판』에 대한 일반적 해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숭고 개념의 적용 방식이다.

 

이상옥은 디카시의 사진을 숭고의 계기로 제시한다. 디카시의 사진은 “거대함, 광대함, 폐허 등 감각적으로 압도되는 대상을 포착하기도 한다.”(54쪽)고 말한다. 이때 시인은 감각의 좌절을 경험하고, 언어를 통해 이를 초월하려 한다. 그러나 칸트에게 숭고는 “숭고에 대한 만족도 감성적‧반성적 판단력의 판단”(임마누엘 칸트, 김상현 옮김, 『판단력 비판(개정판)』, 책세상, 2019, 94쪽)이다. 즉, 대상의 속성이 아닌 판단의 형식이다. 숭고는 특정 대상에 내재하지 않으며, 감각의 한계를 이성이 자각하는 판단 행위에서만 성립한다.

 

이상옥의 논의에서는 이러한 판단 구조에 대한 분석을 충분히 제시하지 않는다. 감각의 충격과 언어적 반응을 서술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반성적 판단으로 조직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이해가 아니라 충돌이다. 생각이 아니라 반응이다”(51쪽)라고 적는다. 이 진술은 디카시의 미적 경험을 감각적 사건으로 강조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칸트 미학에서 핵심적인 ‘판단’의 차원을 이론적으로 축소한다.

 

또한, 칸트 미학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조건은 미적 판단의 보편적 타당성이다. 미적 판단은 주관적 쾌에 근거하지만, 타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형식을 지닌다. 반면, 이상옥은 디카시를 “시인의 몸이 감응한 순간”(52쪽)의 기록으로 규정하며, 그 경험의 공유 가능성이나 판단의 규범성을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 디카시는 미적 판단이라기보다 개인적 감응의 기술로 남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디카시와 철학』에서 칸트는 엄밀한 개념적 기준으로 작동하기보다는, 디카시의 감각적 경험을 강화하는 수사적 자원으로 기능한다. 감각은 인식으로, 반응은 판단으로, 물자체를 체험의 대상처럼 서술하며, 칸트 철학이 설정한 개념적 한계들을 유지하지 않는다.

 

디카시는 문학적 실천으로서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칸트 철학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이다. 철학적 개념을 호출하는 순간, 그 개념이 성립하는 조건 또한 함께 요구한다. 『디카시와 철학』은 칸트를 인용하지만, 칸트의 비판 철학이 요구하는 인식론적·미학적 제약을 끝까지 수행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이 저작은 철학적 이론서라기보다는, 철학 어휘를 차용한 혼성 담론의 성격을 띤다.

 

물론 철학 개념은 원전의 체계 안에만 고정되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 이론과 미학 담론에서 철학 개념은 은유적·전유적 방식으로 재맥락화되어 왔으며, 이러한 전유 자체가 곧 오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전유의 가능성 그 자체가 아니라, 전유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유지되는가에 있다. 철학 개념은 그것이 형성된 이론적 맥락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으며, 특히 칸트 철학의 경우 개념들은 서로를 제한하고 규정하는 선험적 구조 안에서 기능한다. 감성, 오성, 이성의 구분이나 직관과 개념의 관계, 현상과 물자체의 구별은 선택적으로 차용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 개념의 의미를 성립시키는 조건들이다.

 

따라서 칸트 개념의 전유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 개념들이 원래 수행하던 한계 설정의 기능이 최소한으로라도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삭제한 채 감각을 곧바로 인식이나 의미의 원천으로 전화시키거나, 반응을 판단으로 대체하는 서술은 칸트 철학의 전유라기보다 개념의 재명명에 가깝다. 이 경우 철학 개념은 설명을 제약하는 분석 도구가 아니라, 이미 설정된 경험을 사후적으로 권위화하는 수사적 자원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상의 검토는 『디카시와 철학』이 칸트 철학을 참조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그 전유 방식이 칸트 비판 철학이 요구하는 개념적 제약을 어떻게 이탈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감각은 인식으로, 반응은 판단으로, 물자체는 체험 가능한 대상처럼 전치되며, 직관–개념–판단으로 이루어진 칸트 인식론의 구조는 유지되지 않는다. 그 결과 칸트의 개념들은 경험을 분석하고 제한하는 이론적 장치라기보다, 이미 전제된 미적 체험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수사적 자원으로 기능한다. 

 

이는 문학 이론에서 철학 개념이 체계적 조건을 상실한 채 권위적 어휘로 호출되는 전형적 오류 유형에 해당한다. 디카시는 이러한 철학적 정당화 없이도 문학적 실천으로 존립할 수 있으나, 칸트 철학을 호출하는 순간 그 비판적 구조 또한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디카시와 철학』의 칸트 전유는 철학적 논증의 확장이라기보다 미학적 체험 서술의 강화로 이해되는 것이 타당하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6.09.30 10:12 수정 2026.09.3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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