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석의 열쇠, 그러나 문밖에 선 사람들: 이스라엘 아랍계 시민은 누구의 '우리'인가

이스라엘 아랍계는 왜 '킹메이커'가 되지 못하나

"우파냐, 팔레스타인이냐": 나사렛 교차로의 광고판 하나가 드러낸 이스라엘의 균열

84만 표, 64% 증가, 사상 최다 19석: 아랍계 유권자가 투표소로 몰려간 이유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나사렛으로 들어서는 교차로에 커다란 광고판이 서 있었다. 거기에는 '우파냐, 팔레스타인이냐'라는 물음이 적혀 있었다. 네타냐후 총리의 선거 캠프가 내건 것이다. 같은 도시의 길가에서는 아랍계 학생들이 출근길 운전자들에게 전단을 건넸다. 투표하러 가 달라는 호소였다. 이스라엘에서 아랍계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의 아침은 그렇게 두 개의 문장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스라엘의 아랍계 시민은 전체 인구의 약 5분의 1이다. 대부분은 1948년 건국 전쟁 때 수십만 명이 집을 잃고 떠날 때 그 땅에 남은 팔레스타인인의 후손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여권을 갖고 이스라엘 의회에 투표하지만, 많은 이가 스스로를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팔레스타인인'이라 부른다. 그동안 이들의 투표율은 낮았다. 투표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체념 때문이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과 가자 전쟁은 그 체념 위에 두려움을 얹었다

 

하이파에 본부를 둔 아랍 시민 인권 단체 모사와 센터의 수하 살만 무사는 BBC에, 그날 이후 아랍계 시민이 나라의 적처럼 취급받았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거나 반전 시위에 나섰다는 이유로 체포되거나 해고되는 일이 잇따랐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아랍 공동체 예산이 지나치게 깎였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전시 국방비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반박한다. 병원의 아랍계 의사들을 겨냥한 정치 공세가 벌어졌고, 아랍계 버스 기사가 유대인 승객에게 인종차별적 공격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선거전도 그 골을 파고들었다.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8월 유세에서 아랍계 인구가 많은 갈릴리와 네게브를 '유대화'하겠다며 새 유대인 마을 수십 곳을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더 직접적인 공포는 총소리였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존을 위해 일하는 단체 아브라함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아랍계 시민 252명이 살해되었다. 역대 최악의 기록이다. 텔아비브 남쪽 야파에 사는 지아드 사무니는 BBC 기자에게 아들 후세인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후세인은 지난해 11월 집 근처에서 오토바이를 탄 두 남자의 총에 숨졌다. 아직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로서 이 피 흘림이 멈추기를 바란다며, 변화를 원하는 아랍 시민이라면 지금 투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BBC가 인용한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의 9월 조사에서, 아랍계 유권자의 53.5%가 투표할 정당을 고를 때 범죄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선거 직전에는 투표용지에서 이름이 지워질 뻔했다. 집권 연정이 주도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아랍계 정당 '라암'과 '조인트 리스트'의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그러나 10월 2일 대법원이 만장일치로 이 결정을 뒤집었다. 조인트 리스트는 하다시, 발라드, 타알이 모인 세속 정당 연합이고, 라암은 이슬람 운동에 뿌리를 둔 보수 정당이다. 같은 판결로 유대인 출신인 오페르 카시프 의원도 7 대 2로 출마 자격을 되찾았다. 반면 발라드의 사미 아부 셰하데 대표는 자격 박탈이 예상되자 스스로 출마를 접었다. 그리고 10월 27일, 체념은 결집으로 바뀌었다. 두 정당은 84만 표 가까이 얻어 2022년보다 득표가 64% 늘었고, 사상 최다인 19석을 차지했다. 조인트 리스트가 11석, 라암이 8석이다. 종전 기록은 15석이었다. 갈릴리의 도시 사흐닌은 투표율 87%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그 도시의 시장은 이 투표가 주민들이 총에 맞아 죽지 않게 지키려는 비상조치라고 했다.

 

숫자는 아랍계 정당을 열쇠로 만들었다

 

네타냐후 진영 53석, 야권 48석. 어느 쪽도 과반인 61석에 닿지 못했다. 야권에 아랍계 19석을 더하면 67석이다. 라암의 만수르 아바스 대표는 2021년 베네트·라피드 정부에 들어가 아랍 정당 최초로 연정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이번에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경찰의 중대범죄 수사 조직을 세웠고 베네트·라피드 정부에서 공안부 차관을 지낸 유대인 전직 의원 요아브 세갈로비츠를, 입당 없이 연대하는 방식으로 라암 명부의 2번 후보에 올리기로 한 것이다. 아바스는 그 자리에서 상대를 "적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BBC에, 의석만으로는 아랍 사회를 섬길 수 없으며 해결책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열쇠를 쥔 손은 아직 문밖에 서 있다. 야권을 이끄는 가디 아이젠코트는 선거 뒤 아랍계의 지지를 받는 정부에 문을 열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 인정하고,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라는 것이다. 조인트 리스트의 유세프 자바린 대표는 하마스 규정 요구를 거부했다. 연정에 들어가지는 않되 밖에서 야권 정부를 지지할 수는 있다는 입장이다. 조인트 리스트는 아랍계 시민의 완전한 평등, 점령 종식, 두 국가 해법을 내걸고 있다. 정부 안에 앉기보다, 핵심 요구를 들어주는 대가로 표결의 '안전망'이 되겠다는 계산이다. 네타냐후는 아랍계와 손잡는 정부를 위험하다고 몰아세웠다. 그의 캠프는 경쟁자들이 아랍 지도자들과 껴안는 장면을 인공지능으로 만든 영상까지 돌렸고, 선거 당일에는 '이스라엘의 이슬람화'를 경고하며 외국 세력이 아랍 정당 표를 매수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폈다. 이스라엘 최초의 무슬림 장관 랄레브 마자델레의 아들이자 방송인인 모하메드 마자델레는 BBC에, 아랍 정당을 연정에서 배제하는 태도를 한마디로 인종차별이라고 불렀다. 그의 아버지는 2007년 노동당 몫으로 입각했다.

 

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 것

 

오랜 기간을 무슬림 이웃들 사이에서 살면서 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하나 있다. 한 사회의 건강은 다수가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소수가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는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아랍계 시민은 이번에 그 질문을 투표용지에 적어 냈다. 그들의 표는 체제를 거부하는 몸짓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나라 안에서 살아가겠다는, 그러니 이 나라도 우리를 셈에 넣어 달라는 가장 시민다운 요구였다. 우리도 이 나라의 시민인가, 우리 아들의 죽음도 이 나라의 죽음인가.

 

예수께 한 율법 교사가 물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는 강도 만난 사람을 일으킨 이가 당시 유대인들이 업신여기던 사마리아인이었다는 이야기로 답했다. 그리고 질문을 뒤집었다. 누가 그 사람의 이웃이 되었느냐(눅 10:29~37). 이웃은 셈해서 가려내는 대상이 아니라, 다가가서 되어 주는 관계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정치는 지금 아랍계 19석을 셈에 넣을지 말지를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셈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야파의 한 아버지가 아들의 사진을 꺼내 보일 때, 그 곁에 서 줄 사람은 누구인가.

 

이스라엘의 나사렛 교차로의 광고판과 길가에서 전단을 건네던 학생들을 떠올린다. 광고판은 '우리'와 '그들'을 가르려 했고, 학생들은 그 경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려 했다. 그 땅에 평화가 온다면, 그것은 아마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우리'로 불렀느냐에서 시작될 것이다.

작성 2026.11.04 01:09 수정 2026.11.04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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