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계대출 총량 관리로 막혀 있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잔금대출이 다시 공급되고 있다. 수원 매교역 팰루시드에 5대 은행이 총 5000억원을 투입한 데 이어, 서울 서초구 디에이치방배 단지에도 KB국민·신한·하나은행이 각각 1000억원씩 총 3000억원 규모의 잔금대출 공급 계획을 마련했다.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도 취급 규모를 검토 중이다.
잔금대출 공급 재개는 전면적인 정상화가 아니며, 은행들이 가계대출 총량 내에서 사업장별로 대출 한도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규모 단지는 입주 시점에 대출 수요가 집중되는데, 단지 규모와 담보가치에 따라 필요한 대출액이 크게 차이 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입주가 임박한 단지를 중심으로 대출 한도를 배정하되 총량을 조절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오는 9월 입주 예정인 디에이치방배 단지 입주자를 대상으로 잔금대출 사전 상담을 시작했다. 이 은행은 우선 1000억원의 대출 한도를 배정했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1000억원 안팎의 한도를 배정한 상태다. NH농협은행은 13일부터 디에이치방배 잔금대출 한도 배정을 검토하고 있으며, 우리은행도 공급 규모를 살피고 있다.
5대 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은 7월 말 148조 2426억원으로, 전월보다 6531억원 증가했다. 지난 3월 말 145조 9777억원까지 감소했던 집단대출 잔액은 4월부터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4월부터 7월까지 넉 달간 누적 증가액은 2조 2649억원에 달한다. 이는 과거 분양된 단지들의 입주 시기가 겹치면서 중도금과 잔금대출의 실행이 동시에 이뤄진 영향이다.
가계대출 증가세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78조 9791억원으로 한 달 만에 4조 183억원 증가했다. 특히 6월과 7월 두 달 연속 월 증가액이 4조원을 넘었다. 주택담보대출은 한 달 동안 2조 7955억원, 신용대출은 1조 829억원 늘었다. 이미 가계대출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단지 입주까지 겹치며 은행권의 집단대출 관리 부담이 커지고 있다.
잔금대출 공급 과정에서는 은행별로 차주의 대출 한도 산정 기준이 다른 점도 문제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은 분양가의 60%와 감정가의 50%를 계산해 낮은 금액을 대출 한도로 삼는다. 반면 KB국민·하나은행 등은 감정가를 주된 기준으로 검토 중이다. NH농협은행도 감정가 중심 방안을 살피고 있으나, 가계대출 총량과 사업장별 배정 규모를 고려해 최종 기준은 확정하지 않았다.
디에이치방배 단지는 분양 당시 가격보다 최근 입주권 거래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최고 22억 4000만원이었으나 최근 거래가격은 30억원 후반대에 달한다. 대출 규제는 분양 당시 적용받던 기준에 따라 산정되기 때문에 담보가치 산정 방식에 따라 대출 가능액 차이가 커질 수 있다.
감정가를 높게 인정하면 차주당 대출 규모는 커지지만, 총 한도가 한정돼 있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입주자 수가 줄어든다. 반대로 분양가 기준으로 보수적으로 산정하면 대출을 받는 입주자가 늘어나지만 자기자금이 부족한 일부 입주자는 잔금 마련이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담보가치 산정은 은행의 건전성 판단을 넘어서 제한된 대출 자원을 입주자에게 어떻게 배분할지와 연결된다.
금융당국은 잔금대출 공급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특정 단지별 한도 배정이나 별도 지원 지침을 내린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실수요자 불편이 없도록 자율적으로 적정 수준의 잔금대출을 공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권에서는 대출 규제 강화 이전에 분양된 입주 예정 단지의 잔금대출을 가계대출 총량과 별도로 관리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하반기 잔금대출 수요를 약 7만 세대, 26조원 규모로 추산한다. 다만 여기에는 기존 중도금대출 상환분이 포함돼 26조원이 전부 가계대출 순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대규모 단지 입주가 이어지면 매교역 팰루시드와 디에이치방배 사례처럼 개별 사업장별 대출 한도 배분 논의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집단대출 잔액이 4개월 연속 증가하며 잔금대출 창구가 다시 열리고 있지만, 은행별 한도가 무제한으로 늘어나진 않는다. 하반기에는 대출 규제 완화 여부보다 제한된 총량 내에서 어떤 단지와 차주에게 대출을 배분할지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가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