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시인 한정찬의 "송진이 아물어 빛날 때"
송진이 아물어 빛날 때
새소리에 두 귀 씻고
바람에 마음을 헹구면
물소리는 문고리까지 따라온다.
산방의
문을 닫으면
고요가 먼저 들어와
가부좌 틀고 앉아
한참 말이 없다.
내 말소리
내 숨소리는
그마저 온산이 된다.
아침 햇살은
젖은 능선을 넘어와
봉창 한가운데
어룽거리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이렇게 눈부신 일이다.
해가 기울면
낮은 목소리들이
나뭇가지마다 흔들리다가
하루 중 가장 정갈한 자리에
저녁노을로 황홀하게 빛난다.
나는 그 빛을 오래 바라보면
그제야 자세히 보인다.
나무의 옹이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오래 남아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오래 아픈 나무는
상처를 감추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송진 흔적이 남아있다.
투명한 것 하나가
상처의 입구를 막고
시간이 지나면
아픈 자리는 굳어
곰삭은 빛을 머금는다.
가만히 맡아보면
진한 향기가 우러난다.
아픈 곳에서
향기가 시작된다.
마음도
다 아물고 나서야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상처 하나 품은 채
조금씩 단단해지고
끝내
그 자리에서 채워진 빛으로
다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된다.
산방의 문을 연다.
어둠이 밀려오는데
나무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오래 살아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본다.
* 송진(松津): 소나무나 잣나무에서 나오는 끈끈한 액체(진).
한정찬
□ 시인(詩人), 동시인(童詩人), 시조시인(時調詩人)
□ (사)한국공무원문학협회원 고문, (사)한국문인협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한정찬시전집 2권, 한정찬시선집 1권, 소방안전칼럼집 1권’ 외
